1. 피부는 먹기 전 보다 훨씬 좋아졌다. 물리적으로 만져지는 여드름의 개체수가 매우 줄어든 반면, 색소침착의 호전은 이 약으로 기대하기 어렵다. 부담스럽지 않은 제품들로 색소침착을 줄여보고 있지만 호전의 속도가 매우 느리다.
2. 잠이 많아졌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자연적으로 체력이 떨어져 잠이 많이 지는 것인지, 아니면 코로나 때문에 야외활동을 많이 줄이고 운동을 덜 한 탓에 체력이 떨어진 것인지는 구별하기 힘들다. 체감상 일은 예전보다 많이 하기 때문에 피곤한 것도 있을 것 같아 여러가지 요인을 무시할 수 없다. 다만 뚜렷한 것은 주중에 2~3번 낮잠을 자지 않으면 주5일을 버티는 것이 매우 힘들게 느껴진다. 커피는 필수불가결이다. 마신 날과 그렇지 못한 날의 나의 텐션에 큰 차이를 준다. 이것은 피임약의 사이드 이펙트라긴 보단 그냥 나 스스로가 카페인에 중독되어 있기 때문이다.
3. 가슴이 커졌다. 컵이 바뀐 것 같다. 손으로 잡으면 느낌이 완전 다르다. 이로 인해 체중의 셋포인트가 달라졌다. 예전에는 규칙적인 생활을 했던 전제로 매일 아침 화장실을 다녀오고 공복에 몸무게를 측정하면 51.8kg이 딱딱 나왔다. 볼 때 마다 매번 신기했다. 하지만 피임약을 먹고 난 뒤는 들쑥날쑥이 심하지만 보통 눈으로 기억했던 숫자들이 52.3kg/52.8kg/53.1kg 을 많이 보았던 것 같다. 머시론을 먹고 난 뒤로는 51.8kg 의 숫자를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가슴이 커진것이 기쁜일인지 절망적인 일인지 아직 뭐라 말을 못하겠다. 글래머스한 몸매보다는 아직까지 말라깽이 소년의 몸이 더 좋나보다. 호리호리하던 예전 내 모습을 그리워하는 것 일수도 있겠다. 이 부분은 마음이 참 이상하다..
4. 식욕이 급감했고 성욕 또한 급감했으며 소화력이 떨어졌다. 이게 나이를 먹어서 그런건지 아직도 모르겠다 ㅋㅋ 고기만 먹으면 행복한 나였는데 생각보다 많이 먹지 못하는 내 모습을 보면 문득 슬픔이 밀려온다. 이건 나이 먹어서 그런거겠지? 아무튼 그래서 그런지 살이 팍 찌진 않는다. 피임약 먹으면 보통 살이 많이 찐다는데 나는 급격하게 증가하지 않아서 아직은 다행이라 생각한다. 이참에 그냥 적게 먹는걸로 식습관을 바꾸는게 좋겠다. 먹는걸로 즐거움이 안채워진다. 매우 슬픈일이다. 성욕 또한 매우 감소해서 문득문득 번개치는 듯한 꼴릿함은 사라진지 오래다.
5. 골반이 넓어졌다. 이것은 논란이 될 수 있는 표현이지만 나는 왜 골반이 넓어졌는지 알고 있다. 그것은 생리통에서 얻은 자연스러운 천장관절의 확장(?!) 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물론 엉덩이에 살이 붙어 골반이 넓어 보이는 효과를 주는 것도 있다. 하지만 여자이 출산을 위해 생리학적으로 골반이 조금 열리는 것처럼 골반의 변형이 나에게도 약간(?) 보여진 것 같다. 나는 원래 불규칙한 생리덕분에 생리통이라는 것을 일절 모르고 살았다. 그런데 피임약 6개월차에 허리 디스크가 터진줄 알 정도로 허리가 빠지게, 특히 꼬리뼈 주변이 빠지는 듯한 엄청난 통증을 느껴서 매우 불안했었는데 그게 생리가 끝나니 마법같이 사라졌다. 그리고 다시 생리 시작 1주일전부터 슬슬 아파오기 시작한다. 30년 넘게 여자로 살면서 '아 이게 생리통이구나?'를 느끼는 순간이었다. 이런 통증은 천장관절 주변을 라크로스볼로 마사지 해주거나 플라잉 요가에서 인버전 자세를 하고하면 조금 완화되는 기분이 든다. 그리고 다시 하체 운동을 하니까 골반주변부가 안정되는 것 같다. 운동은 누구에게나 좋은 것이다. 직업이 필라테스 강사라 어찌보면 남들보다 더 쉽게 운동을 접할 수 있어 그건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넓어(보여ㅋㅋ)진 골반을 틈을 타 하체 운동을 더 열심히 해야하는데 나는 지금 사진찍는 것과 인스타 이런게 너무 너무 시간아깝고 하기 싫으니 기록으로 남기진 않겠다.
6. 확실히 여성스러워진다. 애교가 많아지고 여우 같은 짓을 하는 것 말고..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이상적인 여성호르몬이 많은 여성을 말한다. 뭔가 얌전하고 차분한 여성...! 이는 피임약에 들어있는 여성호르몬 때문인 것 같다. 일정한 여성호르몬을 주기적으로 투입했을 때의 몸의 변화는 참 많은 것 같다. 나 마저도 성격이 온순해지고 좀 더 둥글둥글해짐을 느끼니 말이다. 예전에는 남자로 태어났으면 좋겠다라며 여자인게 너무 싫어 울었던 적이 있었던 만큼 여성에 대한 혐오가 극에 달했는데 이제는 그런 혐오는 줄어들고 '이렇게 살다가 죽는거지 뭐 여자 남자 다 살기 힘든건 똑같다' 라는 간편한 핑계로 그 분노를 잠재우곤 한다. 그리고 나는 이상하게도 핑크색을 좋아하게 되었다.
7. 생리 전에 확실한 생리통과 기분 다운을 경험하고 있다. 생리주기가 없을 때는 어떤 달은 생리전증후군이 오기도 하고 없는 달도 있고 불규칙적으로 나를 괴롭혔다면, 피임약을 먹고 있는 지금은 규칙적으로 나를 괴롭혀주고 있다. 생리 1주일 전에는 기분이 급 안좋아지고 시니컬해지고 아무도 날 건들이지 않았으면 하고, 건들인다면 누구든지 물어버릴 것 같은 그런 예민함이 주기적으로 찾아온다. 이렇게 생각해보면 여자는 참 안정적으로 살기가 힘든 동물이다. 신체 자체가 아기를 낳게끔 최적화 되어있으니까 말이다.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찬스가 횟수로 봤을 때 15세부터 생리를 시작해 49세까지 한다하면 1년에 12번 생리를 하니 이것을 다 계산해보면 35년동안 약 420번 ... 인생에서 약 400번 생리를 한다는 것= 400번의 생리통을 경험; 활발하고 재미있고 즐거울 수 있는 신체를 지닌 시절에 400번의 생리통ㅋㅋ 기막히다. 이것도 유전별로 다 다르니까 일반화하는 것은 위험하다. 여자가 힘든게 아니라 그냥 인간의 길이 험난하다.. 남자들이 똑같은 생리통같은 경험을 느끼는 건 아니지만 그들도 그들만의 수컷싸움과 수컷의 사회, 그리고 남성호르몬이 떨어지는 갱년기 중년을 맞이할 때 느끼는 답답함과 괴로움은 어떤것과도 비교할 수 없을 것이다. 이건 그냥 인간이 살아가는게 듄나 힘든걸로..
8. 약간 편두통이 존재한다. 오늘도 편두통이 와서 내가 이 글을 쓰게 되었다. 커피를 마시지 않아서 오는 편두통인지, 피임약 장기복용에 대한 사이드 이펙트인것인지 잘은 모르겠다. 하지만 가끔식 찾아오는 편두통은 가볍게 넘어갈 수준이 아니기 때문에 이는 감수해야할 일이다.
9. 털이 얇아진다. 나는 털이 얇아짐을 매우 느끼고 있다. 피임약을 먹을 때와 그렇지 않을 때의 손가락등에 있는 털, 그리고 다리털, 체모 등이 얇아짐을 느낀다. 뻣뻣함이 줄어들고 색도 연해 보인다. 그리고 밀고 난 다음 다시 자라나는 털의 두께 또한 얇보인다. 깎으면 더 얇아진다. 나는 그렇게 느낀다.
10. 결론 : 피임약 때문에 사는 것이 힘든것인지 아니면 그냥 내 인생이 피곤한 것인짘ㅋㅋㅋ 나는 솔직히 여드름 호전만 된다면 계속해서 먹을 것 같다.
1줄 요약 : 피임약에 여드름이 효과가 있다. 단 평소에 여성호르몬이 (매우)부족했던 사람들에게만. 4세대 야즈 먹을 때와 3세대 머시론을 먹을 때의 큰 차이점은 여드름 호전의 속도가 야즈가 훨씬 빠른 것. 그리고 둘의 공통점은 3세대 약으로도 여드름을 잡을 수 있는 것. 그리고 둘을 끊었을 때 다시 생리주기가 생길 여부는 유전에 달려있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 나는 원래 주기가 없어서 약을 끊어도 다시 생리 못하는 몸으로 돌아갈 것 같다.
술, 담배 계속 하지말고 적당히 운동하며 그냥 건강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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